어느 날, 이유도 없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는가. 당신은 그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고, 특별히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의 말과 표정, 행동은 늘 당신을 겨냥한다. 때로는 대놓고 무시당하고, 가끔은 교묘하게 뒷말을 듣게 된다. 처음엔 당황하고, 다음엔 불쾌하고, 결국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억울함이 울분이 되고, 울분이 증오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그 사람과 똑같은 감정의 파동 안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 감정을 끝까지 품고 가야 할까? 당신이 고통스럽게 안고 있는 이 불쾌한 감정들은 정말 당신이 짊어져야 할 몫일까? 우리는 누군가의 미움에 반응하면서, 그것이 곧 나의 태도가 되도록 허락한다. 내가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도 미워하게 되고, 내가 무시당했기에 나도 무시하게 된다. 이 과정은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당연함 속에서, 우리는 점점 누군가의 어두운 그림자에 먹혀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어느 조직에서나 갈등 없이 일하는 유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 상사는 그를 유독 싫어했다. 회의 때마다 그의 말을 끊고, 사소한 실수를 과하게 지적하고, 때로는 그의 공로마저 다른 이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주변 사람들도 눈치를 챘지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그 남자는 묵묵히 버텼다. 처음엔 참았다. 그 다음엔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자기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엔 밝았던 그의 눈빛은 무뎌졌고, 말수도 줄어들었으며,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다. 사람을 증오한다는 건 이렇게, 서서히, 내부부터 부식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다른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의 생일에 조용히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아무 말 없이, 아무 표정 없이. 상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고, 주변은 술렁였다. 그날 이후, 그 상사는 여전히 까칠했지만, 이전만큼 공격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바꾼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치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성숙한 방식의 응답을 택했고, 그 선택은 곧 자유를 의미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건넨다는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깊은 내면의 확신에서 비롯된 선택이며,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는 행위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겠습니다." 이 태도는 미움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증오에 증오로 맞설수록 우리는 파괴적인 게임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서로의 존재를 소모해간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면, 그 게임은 끝이 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착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착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종종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방식은 훨씬 더 강한 존재의 선택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존엄하게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은, 내 감정과 인격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이건 절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사람만이 감정의 격랑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당신의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깨달음을 줄 수 있다. '나라도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사람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사회는 법과 제도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선택 하나하나로 형성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혐오나 분노, 복수심이 아닌, 다르게 응답하는 용기를 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려운 일이다. 감정은 자동 반응이고,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하지만 감정은 훈련 가능하다. 오늘 한 번만 참아보고, 내일 한 번 더 침착하게 응답하고, 모레는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반복된 선택이 결국 나의 성격이 되고, 나의 인간됨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보며 말할 것이다. “저 사람 덕분에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미움을 줄 수 있는 무수한 이유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감싸줄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것은 훈련되고 선택된 태도이며, 결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내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는다.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위한 축복은, 사실 당신 자신을 위한 축복이기도 하다. 그것은 복수의 고리를 끊고, 고통의 반복을 멈추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언젠가 당신의 그 용기가, 세상에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실제로 하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