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많다는 것은 약점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냉정해야 이긴다고 말하고, 논리로 무장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회는 점점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그 속에서 감정은 불필요한 부속품처럼 취급된다. 우리는 더 이상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속상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워졌다. 대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지나가"라는 말들로 감정을 눌러놓는다. 그것은 마치 감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능함이나 감정 노동의 원인으로 치부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감정이 없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운 걸까? 실제로 감정을 잃어버린 삶은 편리할 수 있다. 실망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면 덜 상처받고, 덜 흔들리고, 덜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나 그것은 결국 살아 있다는 느낌조차 무뎌지게 만든다. 아무리 강한 갑옷이라도 매일 무게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몸보다 갑옷이 더 중요해진다. 감정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이 무게는, 겉으로는 보호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삶의 색을 빼앗아간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사람을 볼 때도 감정보다 조건을 먼저 본다. 그의 직업, 연봉, 집안, 학벌, 인맥. 이런 정보들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판단을 끝낸다. 이처럼 감정이 개입할 틈조차 주지 않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진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경험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가 진심으로 힘들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진짜 그 말을 듣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고'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런 시대에 감정을 선택한다는 건 반항에 가깝다. 감정을 꺼내놓는 순간, 약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고, 논리보다 감정을 말하면 신뢰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강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감정을 꺼낸다는 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이고, 자신을 내보인다는 건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며, 그것은 오직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누군가의 감정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해한다'는 말이 진심이 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하고, 그 사람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울 때 함께 울 수 있다는 건, 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며, 인간다움의 본질이기도 하다. 무감각한 시대일수록, 감정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능력은 더욱 빛난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억제한 채 살아가지만, 그 억제된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과도한 분노로, 자기 혐오로, 타인을 향한 무관심으로, 때로는 몸의 통증으로까지. 감정을 무시할수록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반대로, 감정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다. 자기 감정을 인정하고,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는 삶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가장 건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방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상처를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숨기고 무시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드러내어 누군가의 상처를 감싸준다. 전자는 외적으로 강해 보일 수 있지만, 후자는 진짜로 누군가를 치유하는 힘을 가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처를 받지만,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 진짜로 나를 들어주는 그 한 사람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다. 우리가 그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감정을 선택하는 삶은 단순히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며, 관계를 위한 것이고,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감정을 선택하면 우리는 더 자주 멈추게 된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 사람의 표정 속 감정을 읽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멈춘 순간들 사이에 관계가 피어난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배우고,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이제는 묻고 싶다. 감정을 억제한 채 살아가는 삶과, 감정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 중 무엇이 진짜 인간다운 삶일까? 우리는 효율성보다 사람다움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여도 마음이 닫힌 삶과, 가진 것은 적지만 마음이 열린 삶 중에서 무엇이 더 충만한 삶일까?
감정을 선택하자. 그것이 이 시대의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것을 꺼내놓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자, 이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증거다. 감정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더 깊이 연결되며, 더 넓게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감정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행동이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의 감정을 인정해주고, 그 감정에 함께해준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쌓여 하나의 물결이 된다면, 이 무감각한 시대에도 따뜻한 혁명은 충분히 가능하다. 감정을 가진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